
말은 안 되지만 정해연 단편소설집 트리플 시리즈27
평소 장편 소설을 주로 읽지만 요즘은 단편소설에도 손이 자주 간다. 길게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오늘은 한국 스릴러 소설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정해연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 《말은 안 되지만》을 읽어봤다.
소설집 《말은 안 되지만》은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트리플 시리즈로 만들어진 책이다. 트리플 시리즈는 한 명의 작가가 쓴 단편 소설 세 편을 한 권의 책으로 역어 내는 방식으로 선보이는 시리즈다. 이 작품은 트리플 시리즈의 27번째 작품으로 미스터리와 환상, 공포라는 주제로 쓴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님이 쓴 에세이가 있어서 평소 작가님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한국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해연 작가는 2012년 《더블》이란 작품으로 데뷔했다. 《더블》은 두 사이코패스가 등장해 두뇌싸움을 벌이는 스릴러로, 두 명의 주요 캐릭터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전개가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다.
인기 있는 작가님답게 오프라인 서점은 물론 온라인 서점에서도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강한 반전으로 입소문을 타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랭크되어있는 《홍학의 자리》, 윤계상 배우 주연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유괴의 날》이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독자의 시간을 아깝지 않게 하고,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을 쓰겠다는 작가님의 말처럼 작가님의 작품들은 몰입도가 상당하다. ‘페이지 터너’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구나 싶다. 얼마 전에는 《누굴 죽였을까》, 《2인조》라는 작품도 출간되었는데,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다작을 선보이는 걸 보면 집필 능력도, 속도도 상당하신 듯하다.

EP1. 관심이 필요해
내가 일하는 병원 응급실을 자주 찾는 일곱 살 난 아이, 영우. 영우가 오늘 퇴원한 지 이 주만에 폐렴으로 다시 병원을 찾았다. 아이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입원한 아들을 돌보고,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극찬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엄마 이야기를 꺼내면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이는 무슨 일이라도 당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신경이 쓰인다.
EP2. 드림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였지만 2년의 투자로 크게 성공했다. 3억 짜리 마이바흐의 핸들을 쥔 내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엔진 소리가 내 심장까지 두근거리게 한다. 그동안 나를 무시하던 놈들을 역으로 무시하는 쾌감까지, 오늘은 무척 즐거운 날이다. 우월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자신있게 엑셀을 밟는다. “어어?!” 터널에 진입하려던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내 시야에 잡혔다?
EP3. 말은 안 되지만
“세상에, 우리 아이가 말이라뇨? 돼지가 아니고요?”
돼지가 된 엄마가 자고 일어났더니 말이 된 나를 보며 꿀꿀 울부짖었다.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변하는 시기가 온다. 그리고 대부분은 돼지로 변한다. 엄마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말이 됐다. 왜 나는 돼지가 안 된 걸까. 말은 안 되지만 돼지는 되는 세상에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정해연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 《말은 안 되지만》은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로 하여금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과 무서운 공포소설을 읽는 기분, 판타지적 요소에서 오는 기묘한 기분을 고루 맛볼 수 있게 한다. 게다가 각 이야기마다 현실 세계의 부조리함을 호소하는 울림을 안고 있어서 작중 아동학대를 의심하는 의사, 큰 성공을 거둔 남자에게 얽힌 일, 돼지 세상에서 어이없게도 말이 되어버린 학생의 이야기가 오로지 이야기로만 느껴지지가 않았다.
분량은 짧은 단편소설집이지만 그래서 더 임팩트가 있고, 전하는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책에 실린 해설까지 읽으면 나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 책을 덮으며 이 사회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을 시사하는 것 역시 소설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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